이재명정부는 'AI(인공지능) 3대 강국 도약' 'AI 100조원 투자' 등의 야심찬 공약을 내세웠다. 특히 AI분야에서 명망 높은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센터장을 AI미래기획수석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로는 거대언어모델 개발을 이끈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을 지명하면서 기대가 높아진다.
AI분야는 과거 냉전시대의 군비경쟁에 비견되는 거대한 자금전쟁으로 치닫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AI 기술의 발전에 집중키로 한 것은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무한대 자원이 있지 않은 이상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전략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는 한국이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을 '의료AI'로 할 것을 제안한다. 의료는 AI의 여러 적용분야 중 가장 중요한 분야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여러 AI분야 중 글로벌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
한국은 지난 몇 년간 의료AI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방위 경쟁력을 갖췄다. 원천기술은 미국 등 선진국과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기술을 사업화하고 인허가하며 현장에 적용하는 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활발하게 진행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계에서는 루닛, 뷰노와 같은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들이 탄생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기기 인허가 등의 규제를 선도적으로, 심지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보다 빠르게 개선하며 산업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더 나아가 최근 일선 의료현장에서는 AI를 도입하는 병의원이 빠르게 증가한다.
즉, 한국의 의료AI분야는 기술, 산업, 규제, 현장도입을 아우르는 글로벌에서도 보기 드문 전방위 생태계가 형성됐다. 여기에 국가의 전략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한국은 의료AI라는 가장 중요한 AI 응용분야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의료AI는 다른 분야의 AI와 달리 차별화된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일례로 하정우 수석이 과거에 제안한 '전 국민 무료 AI바우처'와 같은 방안은 의료AI 기업엔 혜택이 될 수 없다. 의료AI는 대부분 의료기기에 해당되고 의사의 판단하에 병원에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의료AI산업을 진흥하기 위해서는 결국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하나의 국영 건강보험만 운영되기 때문에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도입에 극히 보수적이다. 최근 혁신의료기술평가,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제도 등이 마련되며 숨통이 다소 트였지만 비급여 상한, 환자 동의서 요청방식 등 업계에서는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의료AI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자 한다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독일은 디지털 치료제가 인허가받으면 무조건 보험을 적용하는 DiGA라는 파격적인 제도를 만든 덕분에 전 세계 디지털치료제 회사가 앞다퉈 진출하는 국가로 단숨에 발돋움했다. 이러한 지원은 특혜가 아니라 국가의 정책적 우선순위에 따른 선택과 집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소버린 AI가 강조되는 지금 의료AI는 한국이 기술주권을 넘어 글로벌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다. 의료는 국민의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각국의 기술과 산업의 자립이 필수다. 한국은 의료AI분야에서 이미 글로벌 최고수준의 기술, 산업, 규제 생태계를 갖췄다. 여기에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우리는 의료AI를 단순히 외국 기술 의존을 낮추는 방어적 맥락이 아니라 오히려 글로벌 AI 패권을 장악하는 공격적·전략적 무기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